잉어 이야기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 과 잉어에 얼킨 전설

파평윤씨가 잉어를 먹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시조탄강사에서 나옵니다. 신라 말 나라가 매우 어지러울 때이다.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굶주렸으나 신라의 귀족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국가에서 농민들에게 세금을 독촉하자 여기저기에서 농민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신라 멸망의 조짐이 파평 고을에서도 일어났다. 진성여왕 7년(893)년 8월 18일 한가위였다. 추수를 해야 할 시점인데 파평에 있는 파평산 기슭에 용연(龍淵)이라는 작은 연못에 안개가 잔뜩 끼면서 천둥과 벼락이 쳤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지 사흘째 되는 날,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연못 한 가운데 금으로 만든 궤짝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금궤를 건져서 열어보니 한아이가 찬란한 금빛 광체 속에 누워 있었다. 금궤 속에서 나온 아이의 어깨 위에는 붉은 사마귀가 돋아있고 양쪽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 비늘이 나 있었으며 또 발에는 황홀한 빛을 내는 점7개의 검은 점이 있어 북두칠성(北斗七星)의 형상과 같았고 손바닥에는 ‘尹(윤)’자가 새겨져 있었다. 윤 노파는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깨닫고 아기를 데려다가 길렀다. 이 아기가 성장해서 파평윤씨의 시조가 되는 윤신달이다. 둘째는 문숙공 휘 윤관장군(文肅公 諱 尹瓘將軍)의 일화에서 나옵니다. 문숙공이 함흥 선덕진 광포(廣浦)에서 전쟁 중에 거란군에 포위당하였을 때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강가에 이르렀는데 강물이 많아 건널 수 없어 망설이고 있을 때 잉어떼가 몰려와 다리를 놓아줌으로 무사히 강을 건너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군의 뒤를 쫓던 거란군이 뒤쫓아와 강가에 이르자 윤관 장군에게 다리를 만들어 주었던 잉어떼는 어느 틈에 흩어져 버리고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러한 연유로 파평윤씨는 잉어가 선조에게 도움을 준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셋째는 한 어부가 굉장히 큰 잉어를 잡아서 우왕좌왕 하고 있는데 파평윤씨의 시조가 되는 학자가 그 앞을 지나다가 값을 후하게 주고 사 와서는 자기네 집 문 앞에다 못을 파서 놓아주니 잉어는 큰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답니다. 그리고는 용이 윤씨에게 소원을 물어 그 소원을 들어줌으로서 은혜를 갚았다는 전설이 있고. 네째는 윤씨의 자손들이 강화에 살 때 임금이 강을 건너지 못하자, 윤씨가 임금을 업고 건너다가 건너지 못하고 한탄을 하고 있을 때 잉어들이 나타나 서로 겹쳐서 다리를 만들어 주어, 임금을 업고 무사히 강을 건넜답니다. 위는 어디까지나 전설이지만 그래도 파평윤씨들은 선조님들의 유지를 이어 받아 잉어의 은혜갚음으로 잉어를 먹지않는다. * 宣德鎭과 廣浦 선덕진(宣德鎭) : 함경남도 정평군 선덕면(定平郡 宣德面)에 있던 고을로 선덕면이 194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으로 함주군에 편입되었으며 광포(廣浦) : 함남 정평군과 함주군 사이에 있는 자연호수. 일명 느근개(넓은 갯벌), 여은포(女隱浦), 연포(連浦), 도련포(都連浦), 도린포(都麟浦), 이응포라고도 한다. 면적 13.3 km2. 최장경 5,950 m, 최단경 1,180 m, 둘레 1만 3700 m. 동해안에 발달한 석호(潟湖) 중 가장 규모가 큰 이 호수는 북쪽에서 수완천(水浣川)·주이천(朱伊川)·여위천(汝渭川), 남쪽에서 금이천(金伊川)을 비롯한 작은 하천들이 흘러들어 함주군 주지면(朱地面)과 선덕면(宣德面)의 경계를 지나 광포강을 거쳐 동해로 흘러 든다. 북한 천연기녑물의 지리부문 제268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