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상 건립 1967년 11월 21일 파평윤씨 대종회 정기총회에서 문숙공 동상을 세우기로 결의하고 동년 12월 28일 임원총회에서 동상건립장소를 문숙공 묘역으로 하기로 하였다. 1977년 1월 25일 「문숙공 윤관장군 기념사업회」가 거족적(3천여명)으로 발족되어 회장에 이선근(李瑄根) 박사가 추대되었다. 동년 9월 28일 동상제작의 권위자인 민복진(閔福鎭)씨에게 제작을 의뢰하였다. (고증 김동욱(金東旭) 박사) 1978년 8월 24일 동상건립장소를 서울 갈현동 통일로 옆 도로공원으로 변경하여 기공식을 가졌으나, 건립장소가 부적당하다는 여론이 많아 서울시와 협의하여 서울역 옆에 있는 서소문공원안에 동상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여 1979년 9월 25일 착공식을 갖고 1980년 5월 8일 2만여명의 종인 및 각계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동상제막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동상이 건립되기까지 당시 대종회장이던 남의(南儀)씨가 전국의 조직을 정비하고 각군단위까지 화수회를 조직하게 하는 등 동상건립성금을 모금하는데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동상건립성금은 경향각지 및 해외동포들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까지 참여하여 거족적 후원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동상의 규모는 동상높이 5.8m, 좌대높이 5.9m, 총높이 11.7m 이며 4면은 돌로서 9성을 부각시켰으며 4면 모서리에는 성을 수호하는 해태상을 세웠다. 동상의 총공사비는 1억1천1백25만원이 소요되었다. 2. 문숙공동상 명문(銘文) 문숙공 윤관장군은 고려 왕조의 초기에 태어나서 문무겸전(文武兼全)의 탁월한 자품(資品)을 갖추고 왕건 태조의 건국이념을 이어받아 고구려의 옛 강토인 북녘의 실지(失地)를 회복하기에 충의불굴(忠義不屈)의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기어코 겨레의 숙원을 성취시킨 위대한 인물이라 문종조에 등과하여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 수태보(守太保)에 이르고 예종때 대원수로 여진정벌의 대작전을 전개하여 천리변경을 소탕하고 9성을 쌓아 자주국방의 시책을 굳힌 다음 마침내 두만강 건너 7백리땅 선춘령에 고려정계비를 건립하고 개선하였으나 정녕 민족의 승리요 영광이었다. 하지만 여진이 영구히 조공을 바친다는 간계에 의자가 약한 문신(文臣)들의 동조로 9성은 환부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 왕조의 세종때에 와서 9성 옛터 일부에 6진을 다시 개척하여 현세기에 이르는 국경을 확정지었으니 장군이 척지진국(拓地鎭國)의 위공(僞攻)은 새삼스러이 국토통일의 비원(悲願)을 안고 민족 중흥의 대업을 위하여 한결같이 전진하고 있는 이 민족의 영원불변한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서기 1980년 5월 8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 이 선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