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대(馳馬臺)


<태사공의 무예 연마장>

시조(始祖) 태사공(太師公)께서 파주(坡州) 파평산(坡平山)에서 글과 무예(武藝)를 닦으셨는데 파평산(坡平山) 마루에서 公이 말달리시며 무예(武藝)를 연마(硏磨)하시던 곳을 치마대(馳馬臺)라 하며, 천유여년(千有餘年)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때 길을 닦았던 석축(石築)이 남아있다.

성주읍지(坡州邑誌)에도 치마대(馳馬臺)가 파평산(坡平山)에 있으며, 윤태사공(尹太師公)이 무예(武藝)를 연마(硏磨)하시던 곳이라고 기록(記錄)되어있다.

여기에는 公께서 훈련(訓練)하시다가 타고 다니던 애마(愛馬)가 죽자 5개의 철마(鐵馬)를 만들어 그곳에 안치(安置)해 두었는데, 후일(後日)에 어떤 철공(鐵工)이 그 철마(鐵馬)를 훔쳐갔다가 그만 즉사(卽死)하였다고 傳한다. 그때 같이 갔던 사람이 두려운 생각(生覺)이 나서, 흙으로 그와 같은 말을 만들어 구워서 그곳에 가져다 놓았으나 그 모양이 아주 작아서 말 같지 않았다고 傳하고 있으나, 지금은 그 형적(形迹)마저 없다.

파평산 해발490미터쯤에 금강사(金剛寺) 사지(寺址)가 있고 지금은 미타사(彌陀寺_가 그 근처(近處)에 자리 잡고 있다. 태사공(太師公)으로부터 2世 공신공(功臣公), 3世 복야공(僕射公)에 이르는 3代가 代代로 금강사(金剛寺) 일대에서 세거(世居)하셨을 뿐만 아니라, 태사공(太師公)께서 용마(龍馬)를 자득(自得)하시고 무예(武藝)를 연마(硏磨)하신 유서깊은 사적지(史蹟地)로서, 3世 상서성(尙書省) 좌복야(左僕射) 금강공(金剛公)께서 9백여년전(九百餘年前) 사찰(寺刹)을 창건(創建)하도록 하시어 公의 이름을 따라 금강사(金剛寺)가 되었으며, 지금도 미타사(彌陀寺) 경내(境內)에는 태사공(太師公)을 비롯한 열선조(列先祖)께서 즐겨 마시면서 무예(武藝)를 단련하셨다고 傳해지는 약수정(藥水井)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미타사는 세계문화탐방에 보면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고려 의종 때(재위: 1146∼1170) 금강거사 윤언이가 자신의 별당(別堂)을 내놓아 승려 관승(貫乘)과 함께 절을 짓고 금강사(金剛寺)라 하였다. 그러나 《봉선사본말사약지(奉先寺本末寺略誌)》에 따르면 1095년(고려 헌종 1)에 창건하였다고 하고, 《파주지(坡州誌)》에는 인종 때(재위: 1123∼1146) 창건하였다고 적혀 있다. 윤언이가 인종 때 활약한 인물이기는 하나 말년에 관승과 교류하며 불교에 심취하였다고 전하므로 의종 때 창건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후 금강사가 폐사되자 아미타불을 비롯한 여러 불상을 부속 암자였던 미타암(彌陀庵)으로 옮기고 암자를 절로 승격시켜 미타사라 하였다고 한다. 1808년(조선 순조 8) 성파(成坡)가 아미타존상에 다시 금칠을 하였으며, 1948년(헌종 14)에 쌍운(雙運)이 중수하였다. 1889년(고종 26) 삼제(三濟)가 칠성탱화를 조성하고, 1897년(광무 1) 지엽(智燁)이 중수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것을 1964년 창우(昌雨)가 중창하고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삼성각·요사채가 있으며, 유물로는 19세기에 조성된 석조불좌상과 나한상이 있다. 모두 나한전에 모셔진 유물이다. 경내에 19세기 말에 제작된 윤관(尹瓘: ?∼1111)의 초상화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절은 파평 윤씨 가문의 원찰(願刹)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ꡓ고 되어있다.

일찍이 용연(龍淵)에서 탄생(誕生)하신 태사공(太師公)께서 성장(成長)하시어, 새 왕조(王朝) 고려창업(高麗創業)에 무훈(武勳)을 빛내신 유적지(遺虛址)에 세워진 금강사(金剛寺)는 불교(佛敎) 전성기(全盛期)이던 고려시대(高麗時代)는 물론 조선시대(朝鮮時代)까지 중수(重修)되어 보존(保存)해온 모양으로, 사지(寺址) 그 일대는 문숙공(文肅公)까지 5代에 이르는 화랑(花朗)과 호국(護國)의 얼이 감돌고 있는 듯하다.

미타사(彌陀寺) 경내(境內)의 우물에는 석불(石佛)이 모셔져있고, 미타사(彌陀寺) 옆 석벽(石壁)에는 파평산(坡平山) 주신(主神)으로 호랑이를 타고 있는 태사공(太師公)을 모셔 음각(陰刻)해 놓았고, 나한전(羅漢殿)에는 무관복(武官服)의 문숙공(文肅公) 영정(影幀)을 오늘날까지 모시고 있어 후손으로서 더욱 숙연(肅然)한 감회(感懷)를 자아내게 한다.

태사공(太師公) 유허지(遺虛地) 금강사(金剛寺) 일대야 말로 우리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정기(精氣)의 진원지(震源地)나 다름없는 성스러운 터전으로, 최근 현지답사(現地踏査)를 통하여 (사지)寺址가 (확인)確認되었고, 미타사와 대한불교(大韓佛敎) 조계종(曹溪宗) 총무원(總務院)에 보존된 문헌(文獻). 전적(典籍)으로 미루어 비로소 고증(考證)을 굳히게 되었다.

위치: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파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