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보서 국역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반드시 그 가지와 잎이 무성하며 물은 그 근원이 깊어야 그 줄기가 멀리 흐르는 것과 같이 사람도 좋은 일을 쌓은 연후에야 그가 남긴 아름다운 기운의 은혜가 여러 세대에 이르도록 끊어지지 않는 것이 필연의 이치이다. 예로부터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성씨는 진나라때에 왕씨와 사씨가 있었고 당나라때에는 최씨와 노씨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집안의 번성함은 한 시대에만 그쳤을 뿐이며 여러 세대를 지나 오면서 영화(榮華)가 국가에 미치고 공이 사직에 있다 하더라도 그 명성이 점점 사라져 나중에는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귀한 윤족으로는 모두 파평윤씨를 첫손에 꼽으니 윤씨의 시조는 고려태조의 중신으로 지금까지 수백년에 걸쳐 공훈을 세운 이름난 장군과 승상이 끝없이 서로 이어져 꽃다운 업적과 아름다운 자취가 자손에게 계승되어 대대로 벼슬을 하니 어찌 왕씨 사씨 최씨 그리고 노씨와 비할 수 있겠는가. 또 능히 대대로 국모를 나시어 성인과 금지옥엽 같은 귀한 몸들을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자손이 마치 메뚜기가 번성하듯 크게 번창하였으니(자손의 번창을 축복하는 시경(詩經) 주남(周南) 종사편에 나오는 말) 이는 더욱 고금을 통하여 있지 않았던 일이다.
윤 감사 (휘개(諱漑) = 좌의정 서파상공)는 파평문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이다. 내가 고향 금마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을 때 조용히 나를 찾아와 족보를 내놓고 머릿글을 청하였다. 내가 생각컨대 옛날 성현들은 세류(世類)가 억매이지 않는 것을 높게 여겼다. 그러나 삼대(하·은·주) 이후로는 족보에 자세히 기록하여 전하였으니 우리 동방 사람들은 이것을 더욱 중히 여겼으되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끊어지지 않음이 드물었다. 맹자가 이르기를 군자의 은택도 오세후면 없어지고 소인의 은택도 오세후면 없어진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사람이 베푸는 선악의 은혜가 모두 오세를 지나지 못하여 끊어진다는 것이니 어찌 일세 이세로부터 백세에 이르기까지 끊어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파평윤씨는 고려초엽부터 수십세대에 이르도록 벼슬한 관리와 재상이 될만한 명망높은 사람들이 계속 나서 더욱 크게 번성하니 비유컨대 이는 뿌리가 깊은 나무와 근원이 깊은 물은 가지와 잎이 무성하고 물의 흐름이 만리에까지 이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마땅히 이 족보는 서책으로 만들어 금석에 새기어 오래도록 전하여 세가거족(世家巨族)으로 하여금 본보기로 삼아 교만하거나 방자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여 뿌리를 북돋우고 선을 쌓게 할 것이니 이 보서가 어찌 파평윤씨 한 가문의 보배일 뿐이겠는가. 실로 세상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니 참으로 장하고 장하도다.
대제학 소 세 양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