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은 우리 시조태사공께서 옥함을 타시고 신비롭게 탄강하신 성지(聖池)로서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눌노리에 있으며 태고적부터 지하수가 솟아나는 천연의 큰 연못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용연에는 용인이 살고 있어 연못가가 불결해지면 뇌성이 진동하고 폭풍우가 친다고 전한다. 시조에 관한 전설이란 신라 진성왕7년(서기983년) 음력8월15일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요란한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용연위에 한 개의 옥함이 떠올랐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고을 태수에게 고하니 태수가 연못가에 나가서 보니 용연 연못위에 떠오른 옥함이 연못 가운데로 밀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날이 저물 무렵 연못가에 빨래를 하던 한 노파가 옥함이 다시 떠오르는 것을 보고 이를 건져내어 열어보니 그 속에는 오색의 우모(羽毛)에 쌓여 어린 사내 아이가 있었다.
천연한 서기를 발하면서 옥함에서 나온 아기는 융준용안(隆準龍眼)으로 코가 우뚝하여 용의 형상을 닮았으며, 양쪽 어깨에는 붉은 사마귀가 있어 일월(日月)을 상징하고 좌우 겨드랑이에는 81개의 비늘이 돋아 있었으며 발에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어 북두칠성(北斗七星)의 형상과 같았고 몸에는 광채가 솟아서 눈을 부시게 하였으니 이 아기가 파평 윤문의 시조가 되시는 태사공이 되신다.
우리 시조 태사공이 득성(得姓)하신 연유에 관해서 종중에서 옛부터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용연에서 옥함을 건져낸 노파의 성을 따라 윤성이 되시었다고 전하나 가첩 및 그밖의 문헌에 따르면 옥함 자체에 윤자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윤성이 되시었다고도 하며, 또한 옥함에서 나오실 때 그 어른의 손바닥에 윤이라는 글씨가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고도 전한다.
이 연못이 훤히 열리면 윤씨가 번창하고, 연못이 메이면 윤씨가 쇠한다는 말이 있고 용연을 준설하는 후손(後孫)은 현달한다는 전설도 있는데 옛부터 종종 준설한것으로 추측되나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근대에는 서기 1920년에 강화종중에서 준설하고 『파평윤씨 용연』 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그 후 1961년에 파평윤씨대종회에서 준설하였으나 예산관계로 완전히 보수하지 못하였다. 용연비가 불행하게도 6·25동란 당시에 크게 손상되었으므로 1972년 3월에 문정공파종중에서 『파평윤씨 시조발상지비』를 새로 새겨 세웠다.
그 연못 주위는 초장(草塲)이었는데 1976년 3월에 태위공파 예산(禮山)종중에서 수양버들150주, 은행나무 6주, 벗나무 5주를 식부하였다.
용연은 옛부터 『윤씨 연못』으로 명칭되어왔으나, 세부 측량 당시에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시 국유로 편입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일정당시에 파주읍에 거주하는 노(魯) 아무개가 개답하기로 허가를 받은 것이 발각되어 우리 종중에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 결과 지적대장(地籍台帳)에는 『윤씨연(尹氏淵)』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용연은 원래는 광대한 연못이었다고 추측되나 유구한 세월에 주위에서 침범하여 현재 지적도에는 2,531평으로 계재되어 있는데 1977년 1월 14일 대종회에서 종중소유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완료하였다.
파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