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보의 효행 전설 | |
root | 2020.08.14 02:07 | |
尹殷保(윤은보)의 효행 전설
세상에 효자가 많기는 하지만 스승을 위하여 친아들의 예(禮)로써 정성을 다한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효자 윤은보(尹殷保)는 본관이 坡平(파평) 호는 철효(節孝)로 지례현 사람이다.
서질(徐隲)은 자를 덕이(德以), 호를 남계(南溪)라 하고 이천인(利川人) 아간(阿千) 신일(神逸)의 9세 손이다.
두 사람은 늘 “우리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사람답게 길러 주시는 분은 스승님 이사다. 아들이 없는 우리 스승님을 모시지 않으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는가?” 하고, 두 사람은 다투어 스승을 모셨다. 맛있는 음식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스승과 함께 나누며 지냈다. 이 두 분의 스승은 장지도(張志道)였는데 후일 스승이 돌아가시자 두 제자는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친아들의 예로써 여묘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윤은보는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기별 이 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공은 병든 아버지를 간호함에 잠시도 허리띠를 풀지 않았다. 온갖 정성을 다한 끝에 다행히 아버지 병환이 낫자 다시 스승의 묘소로 돌아가 여묘에 들어갔다.
몇 개월 후, 윤은보의 꿈에 아버지가 편찮아 누워 계셨다. 곧 집으로 달려가 보니 아버지의 병환이 위중했다.
“하늘이시여, 제발 저의 아버님의 병환을 낫게 해 주시고 대신 제 목숨을 가져가 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구 아버지는 운명하셨다. 윤은보는 아버지의 산소 옆에 막을 짓고 못다한 효도를 애통해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돌풍이 불어 제삿상에 놓였던 향합이 날아가 버렸다. 윤 효자는 ‘나의 정성 이 부족하여 향합이 날아갔구나. 이 불효를 어찌 할고’
하며 지성을 다해 서묘를 계속했다. 캄캄한 밤이면 산에서 온갖 짐승들의 울음소리기 그치지 않았고 조그마한 운박 속에서 비바람을 이겨내기는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부모님을 향한 뜨거운 효심으로 살을 에는 겨울에도 사묘에 정성을 다했다.
수개월이 지난 후였다. 까마귀 한 마리가 묘 주변을 돌 다가 향합을 물어다가 묘 앞에 던져 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효자의 지성에 까마귀 가 감동했구만. ”
하고, 감탄함고 윤 효자의 효심을 칭송했다. 서묘를 끝낸 그는 자신의 앞길을 밝혀 참삶의 길을 열어 준 스승을 잊지 못해 초하루 보름에는 꼭 스승의 묘를 찾아 예를 드렸다.
서질은 아들이 없는 스승을 위해 3 년 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시묘를 하였다. 그렌데, 大喪(대상) 날이 되자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승의 제삿상에 고기를 올리고자 눈길을 나섰으나 눈이 키를 넘게 쌓여 더 나갈 수가 없었다. 서질은 눈길에 막혀 스승의 제사상에 고기 한 점 드리지 뭇 함을 슬퍼하여 밤새도록 동곡했다. 그런데, 새벽녘이 되어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눈길에 누구일까?’ 이상가게 생각하고 문을 열자, 커다란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사라지고 있었다. 날이 새어 밖으로 나가 보니 묘 앞에 큰 노루 한 마리가 있었다. 새벽에 호랑이가 물어다 준 것이었다. 하늘에 닿은 효자의 지성에 감동되어 호랑이가 노루를 던져 줬으며 뒷사람 들이 그 곳을 정성현(精誠峴)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에도 스승의 묘를 극진히 보살피다 부모님이 벙환으로 앓아 눕자, 약을 구하기 위해 온갖 청성을 다했다. 마을 사람들은 연세가 많아서 힘들 것이니 농사나 지으며 임종을 기다려야지 살임만 버릴 뿐이라고 말렸으나, 그의 열성은 요지부동이었다.
‘병이 있으면 약이 있겠지’ 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에도 약초를 찾아 눈쌓인 산을 수 심리씩 들어가 길을 잃고 해멘적 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시자, 눈 덮인 산을 닷새나 헤매다가 꿩을 잡아 드렸다. 갖은 정성에도 불구하고 노환이 깊어 돌아기시자, 그 에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모념 산소를 6년 동안이나 떠나지 않고 시묘하니, 세상 사람들이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했다.
한번은 서질이 시묘 도중 병이 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집안사람이 “3년 시묘도 힘든 터에 어찌 6 년이나 시묘를 하느냐?”
라고 말하며,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만류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몸을 부모님이 물려주시었는데 무엇이 아까워 내 몸 생각만 하는 불 효를 저지를까.”
하며 죽는 날까지 집으로 돌이가지 않겠노라고 거절했다. 하루는 꿈에 부모님이 말씀 하시기를
“네 장성은 가륵하나 6년 시묘 동안 네 몸이 허약할 대로 허약해 졌으니 내 마음이 아프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내려가서 살림을 돌보도록 하여라.” 고 하시며, 흘연히 사라졌다.
다음 날 서질이 얼어냐니 아프던 몸이 가쁜하게 나아 마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늘이 효자를 돌보았다고 칭찬했다.
천하의 모든 물건 중에서 내 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데 이 소중한 몸 을 주신 부모남의 은해를 어찌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겠는가? 어버이를 공경함은 으뜸가는 천륜 도리이니 세대가 다르다고 어찌 변할 수 있겠는가 !
서질과 윤은보의 가륙한 효성이 나라에까지 알려져 세종대왕이 두 사람에게 旌閭(정려)를 내려 지금도 그 정려각이 지례면 교리에 남아 있다.
<참고 문헌 〉 내 고장 우리 향토, 효열행지、
윤은보 서질 정려각. |
|
이전글 | 윤증 선생의 일화 | <재미있는 성씨이… | 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