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의 '비지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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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의 '비지땀'


데일리안 | 입력 2006.02.27. 13:30

[데일리안 김영인 논설위원]

 때 김부식(金富軾)은 젊은 학자였다. 관리이기도 했다. 좋은 집안 출신이어서 콧대가 높았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진 관리였다. 나중에 '삼국사기'를 편찬한 사람이었다.

같은 때 윤관(尹瓘)은 북방민족을 여러 차례 다스린 명장이었다. 여진족이 금나라라는 대국을 세우고도 감히 고려를 넘볼 수 없도록 만든 공신이었다. 김부식이 하급관리였을 때 최고로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임금 예종이 윤관에게 지시했다. 임금의 숙부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비문을 작성하라고 했다. 문무 양쪽에 걸쳐 이름이 높던 윤관이었다. 윤관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했다. 곧 아름다운 비문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젊은 김부식은 안하무인이었다. 대선배인 윤관이 쓴 비문을 보더니 대뜸 시비를 걸었다. "아무렇게나 쓴 문장이다.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김부식의 비난은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임금은 김부식을 불렀다. 비문을 새로 작성해보라고 지시했다.

이쯤 되었으면 김부식은 물러서야 했다. 대선배의 글을 놓고 시비를 건 것부터가 실수였다. 기껏 하급관리가 국가원로에게 대든 셈이었다. 임금이 다시 작성해보라고 지시했더라도 사양했어야 했다.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했다.

그런데도 김부식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양은커녕 그 자리에서 윤관의 글을 새로 고쳤다. 글 재간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비문은 제법 그럴 듯하게 고쳐졌다. 그렇지만 김부식은 이 '사건'으로 인해 낙인이 찍혔다. 무례한 사람이라는 낙인이었다.

이른바 '서강학파(西江學派)'가 비난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청와대의 홍보담당이 바뀌더니 갑자기 공격받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신임 홍보담당은 경제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경제전문가가 홍보담당으로 들어오면서 '과거 경제사'를 캐기 시작하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알려진 대로, '서강학파'는 서강대 교수 출신에게 붙여진 명칭이다. 시장경제를 중요시하고, 성장 우선론을 폈던 사람들이다.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사람들이다. 새벽 별을 보며 일하던 당시에 정책을 추진하느라고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사람들이다. 원로 경제관리들이다.

이랬던 사람들이 '양극화의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양극화'가 국가적인 문제로 떠오르더니 그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거의 한 세대가 흘러서 비난받고 있는 것이다.

낙인찍힌 김부식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월이 흘러 윤관은 사망하고, 윤관의 아들 윤언이(尹彦이)가 뒤를 이었다. 윤언이 역시 부친을 닮아 출중한 사람이었다. 윤언이는 국자감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

임금이 국자감에 행차하더니 김부식에게 주역을 강의해보라고 했다. 김부식의 실력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주역만큼은 미흡했다.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부식은 떠듬거려야 했다. 강의내용이 별로 좋지 못했다.

임금은 배석하고 있던 윤언이에게 김부식의 강의에 대한 질문을 하도록 했다. 윤언이는 주역에 있어서 만큼은 최고 실력자였다. 김부식의 강의내용을 물고 늘어졌다. 김부식은 당황했다. 윤언이의 논조에 막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비지땀만 흘렸다'. 통쾌한 보복이었다. 윤언이는 부친이 수모를 당했던 '과거사'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김부식의 '비지땀'은 현재의 경제 전문가들이 어쩌면 나중에 당할지도 모르는 일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윤관은 국가의 공신이었다. 안하무인인 김부식은 그런 국가공신을 공격했다. 김부식은 자신도 공격받을 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부식은 윤관의 아들 윤언이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임금 앞에서 망신을 당해야 했다. 원로급 반열에 든 김부식으로서는 대단히 언짢았을 것이다.

우리는 원로를 너무 부정하려 하고 있다. 이번뿐 아니다. 잊을 만하면 원로를 깎아 내리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원로를 부정하고, 원로 탓을 하면 다음 세대 역시 원로를 부정하고, 원로 탓을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서강학파'인 남덕우 전 총리는 "대학생 수준의 글"이라며 넘겨버렸다고 한다. 원로다운 너그러움이었다./ 김영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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